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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더빌트

Cornelius Vanderbilt

1794. 5. 27 미국 뉴욕 스태튼 섬 포트리치먼드~1877. 1. 4 뉴욕.

해운업과 철도사업을 통해 1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모은 미국의 대사업가.

밴더빌트
가난한 농부이자 뱃사공의 아들로 태어나 11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바닷가에서 일했다. 1810년 16세에 부모에게 돈을 빌려 처음으로 자신의 배를 샀다. 초기에는 그 배로 스태튼 섬과 뉴욕 시를 오가는 승객들을 실어날랐고 그뒤 1812년 전쟁중에는 사업을 확장해 뉴욕 시 주변에 있는 정부 전초부대에 소형 함대를 공급했다. 전쟁 후에도 계속해서 연락선 사업을 확장해나갔지만, 1818년 배를 모두 팔고 증기선 선장인 토머스 기번스 밑에 들어가 일했다. 1818~29년 기번스 밑에서 일하는 동안 증기선 사업에 관해 배웠고, 이때 모은 자본으로 1829년 증기선회사를 설립했다. 그뒤 10년 동안 운임을 인하하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쾌적한 분위기를 제공해 허드슨 강의 운송을 지배하게 되었다. 마침내 밴더빌트는 그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사업을 옮긴다는 조건에 서명하고 그에게 눌리던 경쟁자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았다. 북동부 해안에 온 힘을 기울여 롱아일랜드에서 프로비던스와 보스턴에 이르는 수송을 담당했다. 1846년경 그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이듬해 뉴욕과 뉴올리언스에서 니카라과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지역에 승객과 화물을 실어나르는 회사를 세웠다. 1849년 골드러시로 서해안 통행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밴더빌트의 액세서리운송회사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이 회사의 성공으로 인해 거의 파산지경에 이른 경쟁자들로부터 매달 4만 달러(뒤에 5만 6,000달러)씩 받기로 합의하고 그 사업을 그만두었다.

1850년대 철도사업에 관심을 갖고 뉴욕-할렘철도회사의 많은 주식을 매점해 1863년에는 그 회사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뒤 허드슨리버철도회사와 뉴욕센트럴철도회사를 인수하고 1869년 두 회사를 합병했다. 1873년 레이크쇼어-미시간서던철도회사를 추가로 소유하게 되었을 때 밴더빌트는 뉴욕 시에서 시카고를 잇는 최초의 철도노선을 만들 수 있었다. 말년에는 뉴욕 시에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을 건설하도록 지시했는데, 그 사업은 1873년 공황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던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엄청난 재산을 모으는 동안 자선사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나중에 테네시 주 내슈빌에 있는 센트럴대학교(뒤에 밴더빌트대학교가 됨)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아들 윌리엄 헨리에게 9,000만 달러를, 4명의 손자들에게는 750만 달러를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반면 평생 여자들을 경멸했던 것을 입증하듯 2번째 아내와 8명의 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유산을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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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더빌트 (미국 기업가) Vanderbilt, Corne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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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더빌트"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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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31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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