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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등록

備邊司騰錄

조선 중·후기 국가 최고기관이었던 비변사의 회의 내용을 수록한 일기체 기록.

비변사등록
273책. 필사본. 통상 1년에 1책씩 만들어졌으나, 사안이 많았던 해에는 그 양이 추가되었다. 비변사는 16세기초 왜구와 여진족의 변경 침입이 빈번해지자 국방경비를 전담하는 임시기관으로 설치되었다. 1522년(중종 17) 추자도 등지에 왜구가 침입한 것을 계기로 상설기구화되었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기구가 확대·강화되었다. 이리하여 비변사는 단지 군무만이 아니라 국정전반에 걸친 모든 문제를 논의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관이 되었다. 대원군의 왕권강화정책에 따라 그 기능을 의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정부의 정책을 주도했기 때문에 〈비변사등록〉의 사료적 가치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비변사등록〉이 언제부터 작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국가기구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작성되었으리라고도 생각되지만, 1616년(광해군 8) 이전까지의 기록은 다른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장기간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현재는 1617~1892년(고종 29)의 276년간 씌어진 273책만이 남아 있다. 1865년(고종 2) 비변사가 폐지된 뒤에는 의정부 안에 비변사와 유사한 조직이 마련되어 고종 29년까지 같은 체제로 계속 기록했다. 엄밀히 말해 이 기록은 의정부에서 관장한 것이지만 그 체제나 형식이 앞선 시기와 동일하므로, 일반적으로 철종 이전의 〈비변사등록〉에 포함시키고 있다. 1617~1892년의 총 276년간 중 54년간의 등록은 남아 있지 않다. 표제는 '광해조비국'(光海朝備局)·'임진등록'(壬辰騰錄)·'정부'(政府) 등 일정하지 않다. 체제는 왕대(王代)와 연월일, 매월마다 비변사의 구성원들을 기입한 좌목(座目)이 있으며, 그뒤에 회의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사건이 발생한 그때그때의 국가 중대사에 대한 전모와 사후 처리방안까지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상평청사목(常平廳事目)·오가통사목(五家統事目)·호적사목(戶籍事目)·대동사목(大同事目) 등의 각종 사목(事目)과 제언절목(堤堰節目)·호조주전절목(戶曹鑄錢節目) 등 각종 절목(節目), 그리고 양역사정별단(良役査定別單)·암행어사별단(暗行御史別單) 등 각종 별단이 250여 종이나 수록되어 있다. 실록편찬의 주요한 자료로 이용되었던 만큼 조선 후기 연구의 1차 자료가 되며, 특히 사회경제적인 변화와 양상을 담고 있어 이 방면 연구의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원본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59~60년에 걸쳐 초서(草書)인 원본을 해서(楷書)로 옮겨 쓴 뒤 28책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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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등록> 또는 <비국등록> (조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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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31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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