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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숙

許貞淑

1902 함북 명천~1991. 6. 5.

여성운동가, 사회주의 운동가, 북한의 고위관리.

아버지는 남로당 위원장이었던 허헌(許憲)이다.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간사이 학원[關西學院], 상하이[上海] 외국어학교를 수료했다. 1924년 5월 사회주의계 여성해방이론의 영향을 받아 결성된 조선여성동우회에 적극 참가했고, 여성문제이론화에 관심을 두어 〈동아일보〉에 수가이(秀嘉伊)라는 필명으로 〈여성해방은 경제적 독립이 근본〉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1925년 1월 주세죽·김조이 등과 함께 무산계급 여자청년들을 조직하려는 목적으로 경성여자청년동맹을 결성했다. 1926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미국에서 여성해방이론과 사회주의이론을 공부하고 1927년말에 귀국했다. 1927년 근우회에 적극 참가해 중앙집행위원, 상무위원, 서무부장, 출판부장 등의 임무를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29년 11월 발생한 광주학생시위사건이 1930년초 경성지방 학생시위운동으로 확산되자 그녀는 제2차 경성지방 학생시위 운동을 주도하여 감옥생활을 했다. 출옥 후 새로운 사회운동을 모색하다 1936년 해외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기 위해 김두봉·최창익과 함께 중국 난징[南京]에서 활동했다. 그녀는 1938년 난징에서 곧 중국공산당 해방구인 옌안[延安]으로 가서 1940년 항일군정학교 정치군사과를 수료한 후 팔로군 120사단의 정치지도원이 되었다. 1942년 조선민족해방을 위한 통일전선체인 화북조선독립동맹에 가담, 중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조선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독립동맹 지부활동을 전개했고 화북조선혁명군정학교에서 교육과장이 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새로 개편한 독립동맹의 집행위원이 되어 월북했다. 이후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부장, 1948년 3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같은 해 8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같은 해 9월 문화선전상, 1949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 1957년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위원장, 사법상, 1958년 평화옹호 전국민족위원회 중앙위 상무위원 등을 지냈다. 이후 1960년대에는 공식적 요직에서 물러났다가, 1970년대 이후 다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과 관련한 활동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대남활동과 대외활동을 벌였다. 그녀는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의 서기국장, 제6·7·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민주여성동맹 대표단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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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숙"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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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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