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퓌스 종신형 선고
1894. 12. 22

프랑스 육군 장교 시절의 드레퓌스

1894년 12월 22일 프랑스의 장교이자 유대인인 드레퓌스가 군사기밀을 독일에 팔아넘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단지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반(反)유대주의파가 이끌던 여론과 프랑스의 언론들은 하나같이 편견과 예단에 입각한 배심원들의 평결과 종신형의 선고를 환영했다. 그러나 뒤이어 육군 소령 에스테라지가 스파이 조직에 가담했으며, 드레퓌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편지의 필적이 바로 에스테라지의 것이라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재심을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은 국론이 양분되는 등 최대의 정치적·도덕적 위기를 맞았다. 드레퓌스는 에밀 졸라를 비롯해 아나톨 프랑스, 마르셀 프루스트 등 많은 양심적인 지식인의 도움으로 마침내 무죄 판결을 끌어낼 수 있었다. 집단적 편견의 희생양이 될 뻔했던 드레퓌스를 구해낸 프랑스 지식인의 집단적 저항은, 지식인의 양심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관련 인터넷 링크

[영어 사이트]
The Development of Modern Anti-Semitism은 근대 반유대주의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드레퓌스 사건을 조명한다. 여기에서 독일과 러시아, 프랑스에서 있었던 유대인 탄압의 역사와 배경도 살펴볼 수 있다.
 

1876
벨, 전화기 발명


Copyright ⓒ Encyclopaedia Britannica,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