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羅蕙錫
1896년 4월 18일 태어남 / 1946년 죽음


나혜석(1920)
"4남매 아이들아, 어미를 원망하지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느니라."

- 나혜석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필가이며, 최초의 여성운동가이다. 개화사상을 존중하는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부터 빼어난 재능과 미모로 주목을 받았다. 1913년 조선 최초의 여자 유학생으로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들어갔고, 졸업 후 귀국해 1918년부터 정신여자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했다.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수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1921년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가졌고,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를 출품한 것을 시작으로 1926년에는 영예의 특선을 차지해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1920년에 결혼한 남편 김우영과 함께 1927년부터 약 1년 반 동안 세계일주를 했으며, 특히 파리에 8개월 가량 머물면서 미술공부를 해 야수파 경향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파리 체류시 최린과의 염문으로 인해 귀국 후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르렀다. 이혼한 뒤 독립적인 생활을 시도했으나 사회적 인습의 벽에 부딪혀 좌절당했고, 행려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관련 인터넷 링크

[한글 사이트]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디지털 갤러리에서 나혜석의 그림들을 찾아볼 수 있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나혜석을 조명한 글로는 신여성에 대한 사회적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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