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직할시

南浦直轄市

평안남도 남서부의 대동강하구에 자리한 직할시.

동쪽은 대동강을 경계로 평양특별시 낙랑구역과 강남군, 황해북도 송림시와 접하며, 서쪽은 평안남도 온천군, 남쪽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은천군, 북쪽은 평안남도 대동군과 접해 있다. 해방 이후 평양 다음으로 가장 크게 변모한 국제항구도시로서 평양의 관문역할을 하며, 산업·문화·관광 기능을 고루 갖춘 북한 제2의 도시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용강군(龍岡郡)·강서구역(江西區域)·대안구역(大安區域)·와우도구역(臥牛島區域)·천리마구역(千里馬區域)·항구구역(港口區域) 등 1개군 5개 구역으로 되어 있다. 면적 약 828.9㎢, 인구 783,211 추정(1988).

연혁

본래 증산 남쪽에 있는 포구라 하여 증산포로 불리었다. 고려말 삼화현에 속했고 조선시대에는 삼화군 원랑면에 속한 억량틀이라는 어촌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 때 일본의 해군기지가 되고, 1897년 개항하면서 항구도시로 발달하여, 1898년 삼화군소재지가 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때도 일본의 군사기지로서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이용되었다. 1908년 평안남도에 속한 진남포부가 되고 1945년 8·15해방이 되면서 진남포시라고 했다가 1952년 남포시로 개칭되었다. 1963년 온천군의 남동부와 용강군의 일부를 편입하여 해안동을 신설하고 1965년에는 회창동·역전동·문화동을, 1967년에는 선창동·진도동·새길동을 신설했다. 1979년에 항구구역과 와우도구역으로 나뉘고 용강군과 대안시를 편입하여 남포직할시로 승격했으며, 1983년 대안시를 강서구역·천리마구역·대안구역으로 분할·개편했다.

자연환경

평안남도의 서부평야지대에 속한다. 대부분의 지역이 오랜 침식작용을 받은 구릉성 잔구와 하안에 발달한 범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온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서부에는 오석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려 국사봉(506m)·오석산(566m)·백암산(419m) 등의 산들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평지의 표준높이는 5.5m 정도이며, 사면경사가 5° 이하인 지역이 80%를 차지한다. 대동강이 시의 동부에서 남부로 흐르며, 그 지류인 금천·사동천·봉상강·인황천·삼화천·사천 등이 있다. 대동강 하류에는 와우도·기럭도·압도·제비섬·언정도·일출도·사엽진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놓여 있다. 지질은 시생대와 하부 원생대의 편마암·결정편암, 경상계의 대보산통 지층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다. 오석산맥에는 화강암이 많으며, 강서구역에는 무연탄이 매장되어 있다. 구릉지대의 토양은 갈색삼림토이며, 대동강 연안과 해안지역을 비롯한 저지에는 충적토와 염류토가 많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10℃ 내외, 1월평균기온 -6.5℃ 내외, 8월평균기온 24.4℃ 내외이며, 연평균강수량 850㎜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가 적은 지역에 속한다.

산림은 시면적의 22%를 차지하며, 오석산맥과 시의 북부, 남동부의 대부분이 울창한 소나무림을 이루고 있다. 그밖에 잣나무·참나무·신갈나무·아카시아나무·밤나무 등이 자라며, 특히 남부에는 온대남부식물인 고욤나무·생강나무·분지나무가 자란다.

인구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50가구 미만이었으나, 일제에 의해 개항하면서 일본 상인들이 활발히 진출하고 철도가 개통되면서 대단위의 공장건설이 이루어져 1941년에는 인구가 7만 7,106명으로 증가했다. 1945년 8·15해방 이후에는 용강군·강서군 등의 인접 군과 읍이 흡수되고, 1979년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인구밀도 943명/㎢의 조밀지역이 되었다. 남포직할시의 총인구는 78만 3,211명(1988)으로 항구구역에 19만 5,803명, 와우도구역에 9만 7,901명, 강서구역에 26만 1,070명, 천리마구역에 6만 5,268명, 대안구역에 6만 5,268명, 용강군에 9만 7,901명이 분포한다.

산업·교통

경지면적은 시면적의 39.1%(1980)이며, 이 가운데 논이 46.7%를 차지한다. 주요농산물은 쌀·옥수수·콩·밀·수수 등이다. 특히 쌀은 전체 곡물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주로 청산·태성·용강 평야 등에서 생산된다. 그밖에 채소·과수·축산·어업이 활발하다. 대안·강선을 비롯한 도시 주변지역에서는 배추·오이·마늘·고추·무 등이 생산되며, 목화·담배·참깨 등은 전지역에서 재배된다. 과수재배면적은 전체 경지면적의 9.3%이며, 와우도구역 화도리 일대, 강서구역 덕흥리, 용강군 옥도리·삼화리 일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사과는 이 지역의 명산물로 유명하다. 또한 강서구역의 약수리와 대안구역의 수산리 일대에서는 양잠이, 북부지역에서는 축산업이 활발하다. 또한 저수지와 하천연안에서는 잉어·숭어·초어·뱀장어 등의 민물고기를 기르는 양식업이 활발하며, 서해에서는 조기·도미·새우·가오리·민어·농어·갈치·삼치·준치 등이 잡힌다. 가마포·와우도에는 현대적 어로시설을 갖춘 수산사업소 3개소와 수산협동조합 5개소가 있다.

남포직할시는 교통이 편리하고, 지하자원 및 전력·연료·공업용수가 풍부하여 최상의 공업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중공업이 발달했으며, 평양특별시와 함께 우리나라 서북부 공업중심지대를 이루고 있다. 강서구역의 강선에는 북한 굴지의 제강·제철공장인 천리마제강소와 4·13제철소가 있으며, 비철금속공업으로 항구구역에 남포제철소가 있어 유산, 과린산 석회와 같은 화학제품까지 생산하고 있다. 기계공업은 농기계·전기기계공업이 중심을 이룬다. 강서구역의 기양농기계공장에서는 연간 약 3만 대의 트랙터를 제작하고 있으며, 대안구역의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는 용성기계공장과 함께 북한 최대의 대상설비전문생산공장으로 전동기·변압기·화력발전기·수력발전기·금속 및 건재 공장설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본래 선박수리공장이었던 남포조선소는 3천t급 이상의 어선과 1만t급 이상의 항해선박을 건조하고 있으며, 남포통신기계공장에서는 라디오·TV를 비롯한 각종 통신기계와 전기기구류를 생산한다. 또한 북한 최대의 남포유리공장에서는 몽금포·구미포의 규사를 원료로 한 판유리·화학유리·광학유리·압연유리 등의 각종 유리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그밖에 전극공장·규격공장·연료공장과, 남포제분·식료품공장·와우도견직공장·강서직물공장 등이 있어 서북 제일의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교통은 1910년에 개통한 평남선(남포-평양)이 1979년에 전철화되었으며, 여객수송과 공산품 및 수출화물 수송을 담당하고 있다. 1938년 개통한 평안선(남포-온천)은 연장 34.7㎞이며, 광량만의 소금과 농수산물을 수송한다. 주요도로는 남포-평양, 남포-해주, 남포-장연 사이의 국도와 남포-황주, 남포-중화, 남포-온천-증산 사이를 연결하는 지방도로가 있다. 또한 1978년에는 남포와 평양 사이에 고속도로가 신설되어 남포항으로 입항하는 화물운반과 관광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대동강을 이용한 수운이 발달하여 평양·송림·대안·제도리로 배들이 운항하며, 특히 평양-남포 사이의 화물수송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남포항은 1978년 기중기·콘베어 같은 하역기계를 증설하고 외항부두와 석탄부두 사이에 새로운 시멘트 전용 부두를 건설하여 서해안 최대의 국제항구도시로 집중 개발되었다. 1986년 와우도구역 영남리에 길이 7,800m의 댐과 최대 5만t급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갑문 3기를 설비한 서해 갑문이 완공되었다. 이로써 수운에 의한 수송능력이 향상되고 남포항의 선박 접안능력 및 하역능력이 향상되었으며, 평안남도와 황해남도 사이의 육로수송이 단축되었다.

유물·유적·관광

강서구역과 용강군 일대에는 고구려시대의 고분과 성터가 많이 남아 있다. 용강군에는 석천산 석지군, 벽화로 유명한 안성리의 쌍영총·용신총·대총, 신덕리의 성총·감신총, 매산리의 수렵총 등이 있고 고구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알려진 둘레 5㎞, 높이 2.5~5㎞의 황룡산성벽이 오석산에 그대로 남아 있다. 강서구역에는 삼묘리 고분, 약수리 고분, 대성리 연화총, 대성리 유적군이 있으며 대성구역에 고구려 후기의 제1호 벽화고분이 있다. 강서구역 약수리에는 유명한 강서약수터가 있으며, 삼화천 어귀에 있는 와우도에는 10만여 평에 달하는 와우도유원지가 건설되어 있다. 대동강 연안의 간척지를 매립하고 1986년 서해갑문이 건설되면서 이 일대는 각종 체육시설과 위락시설이 들어서는 등 국제적 문화관광도시로 개발되었다. 1987년 태성호반에 골프장이 건설되었다.

교육·문화

초등교육기관은 1907년 안중근이 삼흥학교를 세운 후 기독교 계통의 득신학교·삼승학교·해성학교 등이 세워지면서 많은 사립초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중등교육기관은 1911년 상업보습학교, 1913년 실과고등학교, 1917년 상공학교를 설립하였다. 1945년 이후 남포시에는 인민학교 및 고등중학교 외에 남포의학전문학교·남포경공업전문학교·남포전기기술학교 등의 전문기술학교와 남포농업대학·남포수산대학·남포교원대학·남포공산대학·남포전기대학 등의 10여 개의 대학과 의학·농업·기계·전자 등의 고등전문학교들이 있다. 이밖에 서해수산연구소·해양연구소·금속연구소 등의 과학연구기관들이 설립되었다.

용강군

남포직할시 중부에 있는 군. 동부는 대안구역, 서부는 온천군, 남부는 항구구역·와우도구역, 북부는 강서구역과 접하며, 남동부는 대동강을 경계로 황해북도 송림시와 황주군, 황해남도 은천군과 마주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용강읍, 애원리·포성리·입송리·성암리·오신리·월매리·다미리·동전리 ·검산리·지사리·양곡리·삼화리·용흥리·옥도리·용호리·후산리 ·탐하리 등 1읍 17리로 이루어졌으며, 군소재지는 용강읍이다.

본래 고조선 멸망 후 황룡국의 영토였는데, 고구려에 통합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때 황룡성 또는 군악이라 부르다가 후에 용강현이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쳐 1895년 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함종군의 일부를 합쳐 용강·지운·오신·다미·양곡·삼화·대대·신녕·금곡·귀성·해운·서화 ·용월 등의 13개면으로 이루어진 군이 되었다. 1948년 강서군 성암면을 흡수하고 1952년 대대·신녕·금곡·해운·귀성·서화·용월 등의 면을 분리하여 은천군을 신설했다. 1959년 대안리에서 대정리를 분리하여 대안노동자구로 개편하였으며, 1962년 우산리·갈천리·덕해리를 남포시로 이속시켰다. 1978년 대안노동자구는 대안시를 신설하면서 분리되고 1979년 용강군은 남포직할시에 편입되었다.

군의 서부에 오석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고, 여기에 화장산(395m)·오석산(566m)·신덕산(410m)이 솟아 있다. 중앙지대에 구룡평야·용강평야가 펼쳐져 있고, 오석산에서 발원한 서천이 군의 중심부를 지나 대안구역과 경계를 이루면서 대동강으로 유입한다. 토양은 삼림갈색토양이 대부분이고 이밖에 충적토·염류토가 있다. 용강군은 남포공업지대를 배후지로 한 근교농업지대로 발전하였다. 경지면적은 군면적의 45%에 이르며, 그중 논이 42%를 차지한다. 쌀의 생산량이 많고, 이외에 옥수수·콩·보리 등의 잡곡도 생산된다. 과수면적은 총경지면적의 8.1%를 차지하며, 주로 사과·배·밤·복숭아 등을 재배한다. 특히 용강사과와 용흥·삼화·옥도리 일대에서 많이 나는 밤이 유명하다.

군내에는 평양-남포 간의 평남선 철도와 국도, 고속도로가 통과하며, 용강-마영 간에 20㎞ 길이의 용강선 철도가 놓여 있어 육상교통이 편리하다. 또한 대동강을 통한 수운이 편리하여 평양특별시 및 황해남·북도의 연안지대와 연계되어 있다.

용강읍에 고구려시대(5세기)의 용강고분이 있고, 대안과 성암리 사이에는 고구려 후기의 대안리 제1호고분이 있다. 오석산에는 고구려시기의 황룡산성이 있으며, 석천산 일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이 있다. 이밖에 태성호의 경치가 빼어나며, 검산리약수가 유명하다. 면적 284㎢, 인구 97,901 추정(1988).

강서구역

남포직할시 북부 외곽에 있는 구역. 동쪽은 천리마구역, 서쪽은 평안남도 온천군, 남쪽은 용강군·대안구역, 북쪽은 평안남도 대동군·증산군과 접하고 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잠진·태성·고창·청산·약수·삼묘·덕흥 등의 리와 새길·산업·샘물·기양·문화·낙원·봉상·기산·서학·탄포·남산·문천·관포·달마·원정 등의 동인 7리 15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옛 도읍지인 평양에 이웃하여 한사군(漢四郡), 고구려시대의 요지였다. 1136년 고려 인종때 증산·이악 등 대동강 서쪽의 6개 고을들을 합쳐 강서현이 되었으며, 1394년 조선시대에 들어서 증산을 분리하여 따로 현을 만들었다. 1895년 군으로 승격되고 1914년 함종군과 증산군의 일부를 합하여 14개면을 관할하는 큰 군이 되었다. 1948년 남쪽의 성암면을 용강군에 이속시키고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을 폐지하면서 북부의 쌍룡·신정·함종·반석·성대·적송·증산 등 7개면을 분리하여 증산군을 신설하였으며, 서쪽의 일부는 온천군에 속하게 되었다. 1978년 강서군이 폐지되면서 대안시가 되고 1979년 남포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83년 대안시를 폐지하고 3개 구역으로 분할할 때, 옛 강서군의 수산·강서 및 동진면과 보림면 일부가 강서구역이 되었다.

평양준평원에 놓여 있어 총면적의 86%가 해발고도 100m 내외의 구릉과 평야로 되어 있다. 북부에는 대보산(371m)·무학산(342m)·운룡산(305m) 등의 낮은 산들이 솟아 있으며, 청산리 일대에는 50m 미만의 청산벌이 펼쳐져 있다. 대동강이 구역의 남동부를 흐르며, 봉상강이 중심부를 지나 대동강과 합류하면서 하천유역에 평야를 형성하였다. 지질구조를 보면 동부지역은 시생대 결정편암, 평안계 석회암, 점판암으로 되어 있으며, 서부지역은 중생대 사암·혈암·역암이 침식되어 낮은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다. 지하자원으로는 무연탄·고령토·석회암 등이 풍부하다. 토양은 갈색삼림토와 논농사에 유리한 충적토로 되어 있다.

평안남도의 서부 평야지대에 속하는 농업지대로서 경지면적이 구역면적의 44%에 이른다. 대동강·봉상강 등 하천유역을 중심으로 재배되는 쌀은 전체곡물생산의 80%를 차지하며, 청산리 일대는 태성저수지 등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다. 또한 가축사육과 채소재배가 활발하여 근교농업지역으로 발전하였다. 구역 내에는 강서탄광을 비롯한 20여 개의 중소규모 탄광이 있으며, 풍부한 고령토를 원료로 한 건자재공장과 유기유리를 생산하는 화학공장, 편직물공장 등이 있다. 강서제강소에서는 강철·압연강재·2차금속제품·대형 프레스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특히 기양동에는 북한 최대의 농기구전문생산공장인 금성트랙터공장이 있어 트랙터·수확기·이양기·탈곡기 등 연간 3만여 대를 생산한다. 전철화된 평남선이 주요공업지역인 강선역, 기양역, 태성역을 통과하며, 기양에서 대안리 사이에 철도가 신설되었다. 또한 남포-평양 간을 연결하는 일반국도와 고속도로가 나란히 지나며, 기양-증산 사이가 지방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강선은 대동강의 중요한 하항이며, 봉상강을 따라 구 강서읍까지는 밀물을 이용하여 건재 및 기타 화물을 수송하고 있다.

본 구역 내에는 고구려시대의 벽화와 고분이 많다. 덕흥리에는 408년이라는 연대가 기록된 벽화가 있으며, 태성리에는 5세기초의 고구려 귀족무덤으로 연꽃무늬벽화로 알려진 연화총이 있다. 삼묘리에는 7세기 중엽의 것으로 알려진 3기의 고구려고분이 있으며, 이밖에 태성리 제1호고분, 약수리고분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강서의 진산인 무학산과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는 화묘봉이 있다. 약수리의 신약수, 청산리의 구약수는 예로부터 강서약수로 알려져 있다. 평양특별시가 인접해 있고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 신교육운동의 선구적 위치에 있었다. 1899년 안창호가 세운 점진학교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20여 개의 사립학교가 있었다. 구역 내에는 공업도시화에 따라 기양공업대학을 비롯한 각급 학교와 문화회관·체육관·도서관 등의 문화시설이 있다. 면적 291㎢, 인구 261,070 추정(1988).

대안구역

남포직할시의 동부 대동강 연안에 자리한 구역. 동쪽은 대동강을 경계로 평양특별시 강남구 및 황해북도 송림시와 접하고 서쪽과 남쪽은 용강군, 북쪽은 천리마구역 및 강서구역의 일부와 연결되어 있다. 행정구역은 수산·대정 등의 리와 덕성·충성·금산·옥수·대안·은덕 등의 동인 2리 6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강서군 성암면에 속하여 대안리라 하였다. 1948년 성암면이 용강군에 편입되고 1952년 성암면이 폐지되면서 용강군 대안리가 되었다가 1959년 대안노동자구가 되었다. 1978년 강서군이 폐지되면서 이 지역이 평안남도 대안시가 되었으며, 1979년 남포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83년 남포직할시를 5개 구역으로 개편할 때 대안시를 폐지하고 강서구역ㆍ천리마구역과 함께 대안구역으로 분리·개편되었다.

이 구역은 해방 전부터 일제에 의하여 조선제강공장이 건설되는 등 공업지대로 발전하였다. 해방 후에는 전기기계공업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는 북한 최대의 대상설비 전문생산공장으로 대형발전기·전동기·변압기 등 각종 전기기계를 생산한다. 이 구역은 평양-남포 사이의 국도 및 고속도로와 평남선 철도가 통과하고 기양역에서 대안리 15㎞ 구간에 대안선 철도가 부설되어 있다. 또한 대동강을 이용한 수운이 발달하여 평양특별시와 황해북도 송림시 등 공업지대와의 생산적인 연계가 편리하다. 인구 65,268 추정(1988).

와우도구역

남포직할시 남서부에 자리한 구역으로 대동강 하구 연안 일대와 와우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을 포함한다. 동쪽은 삼화천을 경계로 항구구역, 서쪽은 온천군과 광량만을 통하여 서해에 이른다. 북쪽은 용강군, 남쪽은 대동강을 경계로 황해남도 은률군과 접한다. 행정구역은 대태·화도·소강·신녕·영남·고령 등의 리와 남산·회창·새길·서흥·진도·와우도 등의 동인 6개동 6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용강군 대대면과 신녕면에 속했으나 1952년 온천군에 속했다가 1963년 이후 남포시에 편입되었다. 1979년 남포시가 직할시로 승격할 때 삼화천 동쪽의 항구구역과 갈라져 와우도구역이 되었다.

산업은 농업과 수산업이 기본이었으나 남포시에 편입되면서 신흥공업지구로 개발되어 선박수리공장과 와우도견직공장 등이 건설되었다. 1986년 이 구역 영남리와 황해남도 은율군 송곳리 사이의 대동강 하구의 댐 길이가 8㎞에 달하고 최대 5만t급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갑문 3기를 설비한 서해갑문이 건설되었다. 서해갑문은 27억t의 대동강물을 담수할 수 있어 평안남·북도 및 황해남·북도 일대의 서해안 곡창지대에 대한 용수공급과 서부공업지대에 대한 공업용수가 해결되었으며, 대동강 유역 일대의 개발을 촉진했다. 서해갑문 건설로 대동강을 통한 하천운수가 편리해지고 댐 제방 위에 철도가 부설되어 평안남도-황해도 간의 육로수송이 단축되었으며, 남포항의 접안능력이 제고되었다. 인구 97,901 추정(1988).

천리마구역

남포직할시의 북동부에 자리한 구역. 동쪽은 대동강을 경계로 평양특별시 낙랑구역 및 강남군과 접하고 서쪽은 강서구역, 남쪽은 대안구역과 잇닿아 있으며, 북쪽은 평양특별시 만경대구역과 접한다. 행정구역은 보봉리와 보산·봉화·상봉·역전·포구·싸리·천진·천내·새거리·중·신풍·영중 등 12개동 1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강서군 잉차면과 초리면에 속했으나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강서군에 속했으며, 1967년 강서군 강선노동자구, 보봉리, 보산리 등으로 개편되었다. 1978년 강서군이 폐지되고 대안시에 속했다가 1979년 남포직할시로 편입되었으며, 1983년 대안시를 폐지하고 강서구역·대안구역과 함께 천리마구역으로 분리·개편되었다.

이 지역은 일제시대부터 강선리에 제강공장을 건설하여 금속공업이 발달했다. 천리마제공연합기업소는 선철ㆍ입철·파고철을 원료로 각종 압연강재·2차금속제품·와이어로프·대형프레스제품 등을 생산한다. 교통은 평양-남포 사이의 국도와 고속도로 그리고 평남선 철도가 이 구역을 통과하고 대동강을 통하여 평양특별시 및 황해북도 송림시와의 수운이 편리하다. 인구 65,268 추정(1988).

항구구역

남포직할시 남부 중심의 임항지대에 자리한 구역. 동쪽은 용강군, 서쪽은 삼화천을 경계로 와우도구역, 북쪽은 용강군과 접하고, 남쪽은 대동강을 경계로 황해남도 은천군과 마주한다. 행정구역은 신흥·어호·우산·덕해·갈천·한학·문애 등의 리와 도지·유사·한두·마사·마산·지산·남흥·용정·억량기·상대두·중대두·하대두·문화·역전·해안·항구·상비석·중비석·하비석·선창·후포·용수등의 22개동 7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삼화군 원당면에 속하는 억량틀이라는 어촌이었으나 1894년 일제의 대륙침략기지가 되고 1897년 개항하면서 항구도시로 발전하여 남포항이 되었다. 용강군의 대대면·양곡면·삼화면의 일부를 흡수하여 점차 확장되었다. 1979년 남포시가 직할시로 승격할 때 삼화천 서쪽은 와우도구역, 임항지대인 동쪽은 항구구역으로 나뉘었다.

이 구역은 육·해 교통이 편리하고 지하자원과 공업용수 등 부존자원이 풍부한 배후지를 갖고 있어 산업발전에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포제련소는 1915년 일제에 의해 세워진 대단위 비금속 종합공장으로 금·은·동·아연ㆍ카드뮴을 생산하며, 이밖에도 유산·과린산석회 등 화학제품도 생산한다. 남포통신기계공장에는 흑백 TV 및 라디오 같은 전기기구를 생산하고 남포유리공장은 북한 유리생산의 약 절반을 차지하며 판유리를 비롯한 일반 유리제품을 생산한다. 서해안 제1의 남포조선소는 본래 조선상공주식회사 조선공장으로 3,000t급 이상의 어선과 1만t급 이상의 항해선박을 제조한다. 이 구역은 평양-남포 간의 일반국도·고속도로 및 평남선 철도의 종점이며, 남포-온천 35㎞ 구간의 평안선 철도의 기점으로 육상교통이 편리하고 대동강을 통하여 평양특별시 및 황해북도 송림시와 곡창지대인 황해남도 안악군 및 재령군과도 연결되어 하천운수와 연해항해가 발달했다. 삼화천 기슭 간척지에는 80만㎡ 부지에 약 3만 명을 수용하는 넓이 9만 8,000㎡의 주경기장을 비롯하여 실내체육관·실내수영장 등 각종 체육시설을 갖춘 종합경기장이 건설되었다. 인구 195,803 추정(1988).

金南龍 글